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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평가/필름

[국경의 남쪽] 사랑의 곡사포


남북문제, 이젠 블록버스터의 전유물이 아니다.  코메디, 멜로에이르기까지 장르에 국한이 없다.  영화 국경의 남쪽에서, 국경은 문화의 차이, 가치의 차이를 낳는 상징의 선일 뿐만아니라, 사랑을 가로막는 공간이다. 국경의 남쪽은 육안으로 저만치 보이는 가까운 곳일런지 몰라도, 그곳으로 곧바로 가로질러 갈수 없는, 우회하여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바로 눈앞에 있어도 (선호, 연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직사포를날릴 수 없는, 곡사포를 쏘아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중국을 경유해 오는 동안, 둘은 북에서의 맹세를 저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선호의 가족은 남한에 계신 할아버지와의 서신 교환사실이 당에 의해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중국을 통해 탈북한다. 연화는 선호를 남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북에 남는다.  선호는 연화가 결혼했다는 소식에 좌절한후, 자신를 도와준 남한여자 (심해진분)과 결혼한다. 선호의 가족이 모란봉이란 음식점을 개업한 직후, 연화는 가까스로 남한에 도착하게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국경을 문화의 차별선으로도, 사랑의 차단선으로 묘사하는데 모두 실패하고 있다.  영화의 가장 큰문제점은 장르의 뒤범벅에 있다.  장르의 혼성이란, 그 둘이 상쇄 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때 그 진가를발휘한다.  하지만, 영화 전반을 통해 들어나는 코믹한 순간들이-예들 들면, 선호 가족의 독일 대사관 '입성' 연습장면,혹은 선호가 사기꾼을 잡기 위해 잠복하는 모습-선호와 연화의 사랑의 감정의 선을 끊어 놓는다. 차승원의 선이 큰 연기는코메디와 멜로를 넘나드는 이 영화에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조이진은 직설적인 언어와 절제된 연기로 관객을 흡입하는힘이 있다.  (참고로, 난 '태풍태양'에서 조이진의 자연스런 연기에 이미 매료된바 있다.)  연화가 TV에서 선호의 결혼 소식을 접한후, 선호는 철조망을 넘어 연화를 찾아 온다.  피범벅이된 선호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늘어놓는 동안, 카메라는 선호에게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연화의 모습을담는다.  연화는 소리친다: "그 여자의 젖가슴이 만져딥디까? 그 여자의 젖가슴이 만져지더란 말이예요?" 사랑하는남자에 대한 분노를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한 대사였다.  '하나원'에서 졸업식을 수료한 뒤로, 연화는 선호가 경영하는 모란봉을 찾아온지만, 선호를 보지 못하고 되돌아간다. 먼 발치에서 연화를 바라보던 선호가 육교를 건너 연화를 찾아 헤매자, 연화는 거리의 화단에 놓인조약돌을 선호에서 던지기 시작한다.  식상한 멜로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주인공이 남자의 가슴을 때리다 품에 안기는 모습보다과는 사뭇 상반된모습이다. 

국경의 남쪽,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영화 초반부 평양 만수단 공연의 '당의 참된 딸'에서 느껴지는 그 웅장함이나, 씨네마토그라피가 돋보이는 장면들도 있다(선호가 허름한 식당에서 호른을 불기 시작하자, 카메라는 줌아웃하고, 붉은 플라틱으로 고팅된 음식점의 상호가 화면을 수직으로가르면서, 마치 선호의 피눈물을 대변하는 컷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모두를놓친 격이다.  남북 문화차이에 대한 코믹한 묘사가, 선호의 갈등을 제대로 묘사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