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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평가/필름

[그들도 우리처럼] 아! 80년대~

80년대란 보이는 과거보다 보이지 않는 과거가 더 많은 시대.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 (1990)은 그의 5년 후 작품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과 좋은 대조를 보였다. '전태일'이 70년대의 정치사나 80년대 지식인의 위선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그들도'는 '폭력'과 '폭력의 전이'에 관한 영화가 아닐까 한다. 노조나 시위와 같은 당시의 정치적 쟁점들은 영화의 주변부에 머물고, 기영 (문성근분), 다방 티켓녀인 영숙 (심혜진분), 그리고 공장 부사장인 성철 (박중훈분)로 촛점이 좁혀간다. 기영은 서울에서 시위주동혐으로 강원도의 한 탄광촌으로 몸을 피해, 연탄공장에서 막일을 시작한다. 기영이 80년대 국가권력의 폭력성에서 '도피'하고 있다면-기영은 탄촌에서 노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영숙은 성철을 비롯한 남성의 폭력에서 '도망'치려 한다. 이데올로기의 공유가 아닌, 폭력의 피해자란 막연한 동지감이 기영과 영숙간의 인간애에 불을 짚혔는지 모른다. 기영이 신분노출의 위험을 무릅쓰고도 영숙을 성철의 폭력으로부터 구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성철도 가부장적 질서/권력의 희생자인 동시에 영숙에게 폭력을 전이하는 가해자이다.

세 인물간의 공통점은 캐릭터들이 그들 앞에 놓인 선로를 벗어 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처지에 순응하고, 견뎌내야 할 뿐이다. 영화 초반, 오토바이를 타고 비틀비틀 비포장도로를 가르는 성철의 시점숏은 그에게 내재한 불안과 불만을 표현하고, 그러나 성철은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로 부터 버림받았다는 개인사를 극복하지 못한다. 영화 후분부 영숙이 경찰서로 이송되면서 보여지는 그녀의 시점숏은 발버둥처도 벗어날 수 없는,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의 그녀의 운명을 대체하고 있다. 한 폐광에서 영숙을 기다리던 기영은 자신의 앞에 놓인 철수레를 힘껏 밀어 보지만, 앞에 일렬로 늘어선 막중한 무게의 수레들 때문에 꿈적도 하지 않는다. 폭력앞에 한 인간이 가진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미약한가.

기영은 영숙을 기다리다 홀로 기차에 오른다. 영화는 기영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시 돌려보기도 귀않고...) 소멸할 것은 소멸할 지언정, 현재 암울함의 의미가 미래에 비추어, 절망일수도 아님 희망일 수도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같다. 헉!하며 느껴지는 이 괴리감...영화 전반은 기영의 이러한 coda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같은데...

영화가 개봉된 1990년: 80년대를 마감하는 동시에 90년대를 여는 해. 이 영화에서도 80년대과 90년대가 공존하고 있다--영화의 시대적 배경뿐만이 아니라, 스텝에 있어서도. 프리-크레딧 시퀀스엔 90년대 관객들에게 친근한 감독들의 이름이 눈에 띄인다. 조감독에 이현승, 연출부에 김성수 감독와 같이 90년 영화계에 변화를 일으킬 '젊은' 감독들이 박철수 감독의 지휘아래 조력하고 있다. 그들 개인적 취향을 꼭꼭 누른체...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