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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평가/필름

[The Passenger] 그 실존의 범주


오늘 오후 마이클엔젤로 안토니오니의 The Passenger (1975)를 보러 갔다.  30년이 훌쩍 지난 후에 재상영된 영화.  안토니오니의 '일식'(1962)은 내가 고등학교때 교육방송에서 우연히 본 후 잊혀지지 않는 영화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Top 10에 드는 영화이다).  내 친구 패트릭은 영화사상 일식의 마지막 20분을 따라올 만한 영화는 없다고 했다.  영화속 두 연인이 지나쳐 버린 장소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부재한 공간을, 카메라는 다시금 되새긴다.   유럽 실존적 영화의 지존, 안토니오니.

내가 요즘 실존적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 이 영화의  분위기에 취할 수 있었다.  잭 니콜슨도 지금과는 달리 꽤 섹시하게 나오고... 잭 니콜슨 (David Locke)-영화속 이름도 꽤 철학적이다.  David Hume과 John Locke를 결합해 놓은 듯한이름.  Locke와 Hume은 영국 경험론의 거두가 아닌가? ㅎㅎ 우리의 경험은 그것이 축적될 수록 그저 우리에게 익숙한 범주속에 일반화되고 포함되는 것 아닌가? 실존적 경험이 그렇게 범주화 될 때, 그것은 실존적 의미를 잃게 된다. 

생각해 보니, 안토니오니의 이 영화는 경험주의에 대한 비판일런지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카메라는 잭 니콜슨의 호텔방으로 부터 호텔 밖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점점 줌인 (zoom-in)하여, 창틀을 넘어선다.  잭 니콜슨의 살인 장면은 프레임 밖에서 일어나고, 카메라는 현장에 경찰들이 도착한 후에야 다시금 호텔 방안을 엿본다.  우리의 실존적 경험이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듯, 주인공의 죽음도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기는 불가능한 사태인가?  

Locke/Robinson의 죽음앞에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은 그의 아내가 아닌, 그의 journey에서 우연히 만난 이방인(마리아 슈나이더)이다.  나의 존재를 그 자체로 기억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의 가족들?  나의 친구들?  아니면, 우연히 스쳐지나간, 그저 나와 한 순간을 '진정'으로 공유한 사람들? 왜 내 글은 대부분 의문형으로 끝나지???